5.12.2024
주일 대예배
“참된 응답을 받는 비밀”
최명신 목사님
서론 Introduction
지난 수요일 저녁 9시 30분경에 손성호 목사님이 소천 하셨다. 어제 토요일 오후 1시에 장례를 치루었다. 이 목사님은 우리 교회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 분이다. 우리가 교회 처음에 개척할때 출석 하셔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교회에 다락방으로 인해 어려움이 왔다. 그때 목사님이 교인 40명 정도 데리고 가셔서 늘푸른교회를 개척했다. 나가서 목회를 열심히 하셨다. 그런데 목회 하던 중에 심각한 질병에 걸리시게 되었다. 그 질병은 혈액에 모든 면역이 떨어지는 질병 이었다. 그래서 아주 고생을 많이 했다. 피를 전부 빼서 다시 집어놓고 해야했다. 거의 희망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약간 회복이 되었다. 회복 하셔서 교회를 정리하고 치유에 전념 하셨다. 회복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워서 카톡으로 기도내용을 쓰고 회복되어 감사하단 내용을 보냈다. 그런데 카톡을 보냈는데도 반응이 없다가 한달정도 뒤에 감사합니다 라고 짧은 답장이 왔다.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덕신 이라는 친구 목사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복음을 받지 않고 강경하게 나왔다. 그래서 Southwestern 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주장이 아주 강했다. 카톡을 보내고 반응을 보니 아직도 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안과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 그 분과 마주친것이다. 저를 보더니 목사님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온 병원이 다 들리도록 소리를 지르는것이다. 옛날과는 완전히 반응이 다른것이다. 그래서 반갑게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의 안부도 묻고 했다. 그게 마지막 모습 이었다. 이덕신 목사님에게 전화 한통을 받았다. 손목사님과 친구니까 RU 예배 참석하고 나서 그와 만났다고 한다. 방문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 하신 말씀이 다락방에 대해 참 오랫동안 오해를 했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아 하나님께서 사랑 하시니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좋은 관계를 갖도록 하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참 인생이라는것이 너무나 짧구나 생각했다. 공부 하러 유학와서 만난 분 인데 순식간에 돌아가시게 된거다. 그 순간 같은 인생 가운데 어떻게 사느냐 따라서 영원이 결정 되는것이다. 여러분도 정말 언약 안에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1. 이사야의 영적 진단 Isaiah's spiritual diagnosis
1) 빛이 없어진 이스라엘 Israel loses the light
사 Isaiah 59:9
시 Psalm 119:105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지난 시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모습으로 보고 세상사람들이 타락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보았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것을 보고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 하는 내용이 오늘 말씀내용이다. 9절 말씀에 빛이 없다 하였다, 그 원인이
“그러므로 정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이라고 했다. 백성들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는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 하는 정의와 공의의 기준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 이라는 말이다. 제가 이 책을 찾아보니 칼빈이 정의와 공의에 대해 정의를 내린 대목이 있다. 그에 따르면 정의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기준이고 공의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호 하시는 기준 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니까 정의나 공의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모습 이라는것을 알수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그러므로 정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결과가 생기나.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에 행하므로” 여기서 빛은 태양이나 전구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빛 보다 더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있다. 그것은 영혼을 밝히는 빛이다. 그 빛은 참 빛이요 영생의 빛이다. 시편 119:105 말씀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오 내 길에 빛이니다" 라고 써있다. 말씀이 바로 빛이다 라고 말하는것이다. 말씀이 뭔가. 바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으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말씀이 없으면 어떠한 삶을 사는지 말하는것이다.
2) 탄식하는 이스라엘 Israel in grief
사 Isaiah 59:10-11
요 John 8:32
10절, “우리가 맹인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죽은 자 같은지라.”
아주 심각한 상태를 말하는것이다. 우리 눈이 분명히 떠져 있는데 맹인처럼 더듬으며 다닌다는 말이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이게 바로 말씀을 떠난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살지 않으면 살면서 제대로 보고 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영적인 눈이 감겨지게 되면 방황하며 살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뒤 갈 길을 잃어버리고 수풀속에 숨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뭔가 일이 되는것처럼 악을 행하고 다닌다. 그게 성공하는것 같으나 사실은 죽은자와 같다 하는 말이다. 다시말해 말씀 없는 자의 성공은 죽음의 길 이라는 말이다. 그때 사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11절에 나온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곰이 마치 죽어가며 부르짖는 모습과 같다 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가 없다면 살아가는 자체가 고통과 신음속에 살아가게 되는것 이라는 말이다. 영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 말할수 없는 고통속에 살아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향해서 하는 이야기가 너희가 왜 이런 고통속에 있는지 아느냐, 그건 바로 너희가 복음을 떠나 그러한 고통 받는것이다 하는 말이다. 이사야서에선 그렇다면 살수있는 길이 뭔가 묻는다. 살수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8:32에 정확하게 나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루라도 말씀 붙잡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말씀 묵상하지 않으면 그렇게 길을 헤메이기 시작 하는것이다. 세상이 좋게 보이고 세상이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의 길로 인도하는지 모른채 가는 것이다. 살수 있는것은 진리를 아는것 이다 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 하는것이다.
2. 이사야의 해결방법 Isaiah's solution
1) 개인적인 죄를 고백 Repents his own sin
사 Isaiah 59:12-13
눅 Luke 13:4-5
요 John 13:8
그 해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내놓기 시작한것이다. 12절 말씀 보게 되면,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스라엘이 포로 된 이유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기 때문 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했다. 포로되어 심판 당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악을 당하였기 때문 이라는 말이다. 참 이상하다 하나님이 떠난 자들은 똑같이 아담과 하와 타락 한 뒤에 방황하듯이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님 떠나니까 백성들이 부패하고 타락해 같이 하나님을 저버렸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죄가 너무나도 만연해 노아 홍수때 처럼 심판 하시려는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똑같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나고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것을 알아챈 것이다. 우리가 죄악 때문에 이런일들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이야기 한다, “우리가" 나 포함해서 우리 백성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속였으며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고 정직하게 모든것을 내놓는 이사야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 하는것이다. 말씀이 내가 살아가는데 무슨 필요가 있나 무시 하는것이다. 또 속였다고 한다, 말씀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자기 스스로의 유익과 해석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말하는것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따르는데서 돌이켜 살았다고 했다. 말씀을 거역하고 이와 반대되는 타락된 삶을 살았다고 했다. 포악과 패역을 말한다고 했다, 이정도 되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하는 상태까지 이렀을수도 있다. 창세기 3,6 의 상태를 같이 반복 하는것이다.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낳으니, 그냥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터 거짓을 말하는 상태이다. 이들의 멸망의 원인은 삶 뿐만 아니라 마음 자체가 타락 한 것이다. 여기서 성경구절 하나 찾아보아야 겠다. 눅 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 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망하리라”. 예수님 오셔서 공생애 사시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대로 타락을 해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망대를 지었는데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명이 한꺼번에 죽은것이다. 주님께서 말씀 하신다, 너희들 보다 그들이 더 죄가 많아 죽은지 아느냐? 너희도 회개 하지 아니하면 이같은 재앙을 당하게 될것 이라는 말씀이다. 회개 할 기회를 주었으니 빨리 회개 하라는 말이다. 세상에 많은 재앙과 재난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많이 지어서 저렇구나 판단할수 있다. 여기에 분명한 답을 주님께서 요13:8 주고 계신다. 베드로의 발을 씻으며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 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세상의 죄를 씻어주실 분은 오직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라는 말이다. 해답은 바로 그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2) 사회적인 죄를 고백 Repents the sin of the nation
사 Isaiah 59:14-15
요 John 16:33
그리고 14절에 이사야 선지자가 사회 전반에 퍼진 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려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이 말은 정의와 공의가 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약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것이다. 아무리 억울한 일 당한들 도와줄 보호자가 없다는 말이다. 아주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그 거리에 엎드려진 상태가 말하는 것은 대낮에도 악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전 백성이 타락 되었다 이 말이다.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의가 살아야 하는데 이제는 힘 쎈 자들 돈 있는 자들이 이기고 곧 법이 된다 하는 말이다. 대낮에 악행을 저질러도 누구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15절,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악으로 부터 떠나는 자가 먹이가 된다, 정직하고 공의롭게 사는 사람이 타겟이 된다 이 말이다. 말씀 대로 살려는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한다 이 말이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님께서 요 16:33에 말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른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여러분, 특히 우리 렘넌트들 붙잡기를 바란다. 우리가 예수님 믿음으로 어려움을 당할수도 있고 힘든 일을 겪을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을 붙들라는 것이다. 그러면 네 안에 평안이 깃들게 될 것 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우리 주님은 흑암을 꺾으신 만왕의 왕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왕되신 그리스도 붙잡게 되면 평강을 얻을것이다 라는 말이다.
3. 받아야할 참 응답의 비밀 The mystery of true answers which you must receive
1) 시작의 비밀 The mystery of the start
행 Acts 13:2, 14:19
이러한 세상속에 우리가 받을 응답이 뭔가.
다시 또 언약을 잡아야겠다. 시작을 잘 누릴수 있는 비밀이 있다는 말이다. 타락된 황무지를 살릴 힘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나.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러한 응답이 반드시 있을줄을 믿는다. 왜냐면 우리는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받는다. 이 응답 올때까지 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작의 비밀이다. 또 하나 잡을것, 행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복음 증거하다 유대인들에 붙잡혀 돌로 맞고 죽은줄 알고 내던져졌다. 놀랍게도 죽은줄로 알았던 사도바울이 일어나 비틀 거리며 다시 성읍으로 돌아간것이다. 왜 그런가.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디모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작하는 두번째 비밀은 바로 제자를 찾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제자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었다. 우리도 여기에 생명을 걸어야 할 줄 믿는다.
2) 전환점의 비밀 The mystery of the turning point
행 Acts 16:7, 14
두번째는 전환점의 비밀 이다. 행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가다가 막히는 경우도 있다. 뭔가 일이 안 풀릴때도 있다. 기도 하심으로 기다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반드시 우리에게 주실것 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 뭔지는 사도행전 16:14 빌립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알수가 있다,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놀라운 구절이다.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지역에 루디아 라는 여자를 찾게 하기 위해 사도바울의 다른 길을 막으시고 그 길로 보내셨다 이 말이다. 가서 복음을 전하니 주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었다 했다. 이 루디아라는 여자가 자기의 집을 내어 헌신하며 마침내 그게 교회가 되었다. 교회를 세우는 제자가 예비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그리로 보내신것이다. 이 축복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세번째, 중요한 정복의 비밀이다.
3) 정복의 비밀 The mystery of the conquest
행 Acts 17:3
살전 1 Thessalonians 1:5, 7
사도행전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갔을때 일어난 일이다. 그들에게 증명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사실을 정확하게 증거 한 것이다. 이것이 정복의 비밀의 첫번째이다. 정확하게 증거할수 있게 말씀이 우리에게 편집이 되어야겠다. 이를 통해 살전 1:5 보면,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라고 되어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된 사실이 그의 안에 편집되어 정확하게 증거하니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 나타났다고 하는것을 볼수가 있다. 복음의 능력의 역사로 지역이 살고 후대가 견고하게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는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어야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우리가 들을수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7에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새 안식일 동안 말씀을 증거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견고하게 서게 된 것을 볼수가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만 정확히 붙잡아도 이 모든 역사가 일어날수 있다는 사실 믿어야겠다. 이 정복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줄을 믿는다.
결론
살전 1 Thessalonians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음을 허락해 주시고 복음의 인도 속에 있는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참 감사 드린다. 이 사실 안다면 우리가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심판의 그 날 까지 이것을 끝까지 붙들고 승리해야겠다. 언약잡은 자 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여러분들을 붙들고 인도 할 것이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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