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ch 15, 2020 - The Enjoyment of Paul the Absolute Disciple

Writer's picture: Immanuel DallasImmanuel Dallas

Updated: Mar 15, 2020


한글 녹취 다운로드



절대제자 바울의 누림(행27:27-37)


서론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이 쓴 단편 소설의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고 계셨다. 한 술주정뱅이를 만나셨다. 예수님이 그 사람을 보면서 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낫게 해 주신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러나 걸으면 뭐합니까. 직장을 찾아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날 예수님께서 어떤 창녀가 남자를 유혹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를 보고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내가 창녀로부터 구원해 준 사람이 아니냐. 어찌 이런 생활을 다시 하고 있느냐.” 그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창녀에서부터 발을 씻었는데 그래도 행복이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시 돌아왔습니다.” 또 길을 가셨다. 길에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깡패를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어보셨다. “너는 내가 눈을 뜨게 해준 소경이 아니냐. 왜 이렇게 살고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눈을 뜨고나니까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를 화나게만 만들고 기분 나쁜 것만 보였습니다. 보이는 것 마다 화가 나기 때문에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스카 와일드가 쓴 내용이다. 어떻게 본다면 참 이상한 얘기 같습니다만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구원을 받았음에도 왜 이렇게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느냐는 것이다. 왜 변화가 생기질 않느냐는 것이다. 왜 응답을 받지 못하고 옛날의 삶으로 돌아가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잡아야할 것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불신자의 12가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있다. 많은 사람들을 보게되면 교회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신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있다. 왜 그런가. 또 어떻게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기 바란다.


1. 세상 사람들의 모습

1) 폭풍 속의 사람들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만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만나서 귀중한 메세지를 들었다. 하나님 메세지를 전해줬는데, 이 배에 있는 사람이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살 것이라고 하셨다. 배만 조금 상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는 다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얘기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될 줄을 믿노라 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 선포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고 14일 째 되는 날에 뭔가 선원들이 육지에 가깝게 가고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어를 보게되면 해안가에서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듣게된 것이다. 이제 정말로 가까이 됬구나 하고 바다에 줄을 내려서 깊이를 재어봤다. 스무 길이나 된다고 했다. 조금 지나니까 열다섯 길이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육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잘못하면 암초나 모래초에 부딪혀 배가 파선되겠구나 해서 뒤로 가서 닻을 내렸다. 그런데 몇 선원들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암초에 부딪혀서 배가 파손되면 다 죽는다. 그러기 전에 거룻배를 내려서 도망가자 하고 작전을 짰다. 사도바울이 그 사실을 보게된다. 백부장에게 이야기한다. “만일 저 사람들이 도망가면 여기 있는 사람이 모두 죽게된다. 저 일을 중단시켜라.” 그 얘기를 듣자마자 거룻배의 줄을 끊어서 배하고 분리시켜버린다. 폭풍 속에 있는 배 안에서 생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모습인 것을 볼 수 있다. 그 위기 가운데서도 함께 같이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다. 지금 이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겠는가.

2) 풍랑 속의 세상 사람들

이 모든 세상에 사는 사람 자체가 풍랑 속에 있는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위험 속에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만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자기 이익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도망간다고 해서 특별히 살아날 방법도 없는데 그냥 도망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신자들하고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왜 이렇게 고통 속에 살고있느냔 말인가. 12가지 문제에서 그냥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왜 당하고 있는지 모르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 나름대로 교회가서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다가 안되니까 다시 옛날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고난 당하는 사람을 만나게되면 가서 이야기한다. 그럼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답을 준다. 가장 많이 주는 답이 고전 10:13 말씀이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 오는 것이다, 그런데 감당할 시험밖에 하나님이 주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이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지켜라.” 그런데 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견디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한다. 눅 9:23에서 말하고 있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당신이 당하는 고난을 당신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기다려라.” 너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생각하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참으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갈 2:20을 이야기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 않느냐. 그것을 위해서 네가 죽어야한다. 네가 죽으면 해결될 것이다.” 그래서 그저 내가 죽어야죠, 참아야죠 하고 견딘다. 이런 사람들의 신앙의 목표는 바로 갈 5:22-23에 나타나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얘기하지 않느냐. 이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성을 닯아가야한다. 거룩한 인격을 갖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참는데는 선수들이다. 잘 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문제가 신앙생활에 힘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영적, 정신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하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교회에서 해결에 안되는 것이다. 어디 산으로 가자, 기도원 가자, 사람 만나러가자 하고 찾아다니게 된다. 우리가 방향을 잘못잡게되면 이것이 가장 옳은 길인 줄 알고 찾아다니다. 우리가 이 시간 분명히 잡아야겠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2. 절대 언약

1) 절대 계획

성경에서는 기록할 때서부터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 기록되어있다.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영세전부터 감추어진 계획이 있다. 그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절대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많이 기록된 이유는 창 3:15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시기위해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계시한 사건이었다. 바로에게 노예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키는 사건이다. 바로 그것이 절대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해결시키는 간단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바로가 항복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바로를 항복시키고 하나님의 심판을 넘기는 유일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의 피를 말씀하신대로 문에 바르기만 했는데 그렇게 됬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방법을 가르켜주시는 것이 성경말씀이다. 문에 희생양의 피를 발랐더니 노예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은 이것이다. 어떤 사람도 이 사단의 노예가 되길 원하시지 않는다. 저주받은 삶에서 고통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고통 가운데서 사는 것을 원하시는게 아니다. 그래서 이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셨다. 이 바로가 사단을 의미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노예된 것은 인간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사단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다. 저주 받은 삶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옥 심판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참고 견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잡으면 해결 된다는 것이다. 이게 절대 계획이다. 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라 하더라도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희생양의 피를 바르면 다 되지 않느냐. 그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는 모든 문제의 답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면 이 응답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참고 십자가를 내가지고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붙잡기만 하면 해결되는데 이것을 잡지 않고 딴짓하고 있으니까 해결이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절대 언약을 붙잡게되면 절대 여정속으로 들어간다.

2) 절대 여정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 충만함을 붙잡게되면 절대 여정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절대 여정은 다른 말로 언약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 언약의 흐름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흐름을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출 2:1-2말씀을 드리겠다. 출애굽 사건의 시작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보게되면 바로가 아들을 나으면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을 했다. 그 때 이 요게벳은 그러나 바로 왕의 명령을 듣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붙잡아야겠다 한 것이다. 그래서 바로가 죽인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세를 나았다. 그래서 석 달을 숨겼다. 석 달을 숨기다보니까 아이가 점점 커져서 붙들려서 다 죽게 생겼다. 이 때 요게벳은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이 석 달된 어린 아이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맞기고 보내야겠다 생각을 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았을 때 젖을 땔 때까지 데리고 있었다고 나온다. 요게벳은 젖 땔 때까지가 아니라 석 달 때 하나님께 맡겼다. 갈대아상자를 만들어서 강에 띄워버렸다. 요게벳의 기도는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요게벳의 믿음을 받아주시고 응답하셨다.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띄웠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바로의 공주 앞으로 보내셨다. 우연히 간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공주가 그 뚜껑을 열어본다. 유대인의 아이, 모세가 그 안에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자기 아버지 바로는 유대인의 아이는 당장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공주는 모세를 보자마자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키워야겠다. 그 마음을 누가 주셨는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리고 궁중으로 들어간다. 궁중에서 공주가 자기 양자로 삼아서 직접 키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게벳에게 최고의 응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 다 맡기고 띄워보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공주를 만나게 하여서 궁중 속에서 보호를 시키셨다. 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요게벳이 계속 모세에게 젖을 먹일 수 있도록 만남을 주셨다. 요게벳은 하나님의 절대 여정 속에 있는 언약을 잡은 사람이었다. 젖을 먹일 동안 언약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당시에는 젖을 네, 다섯 살까지 젖을 먹였다고 한다. 그 어린 아이에게 언약을 각인시켰다.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났는가. 나중에 창세기를 쓸 수 있었을 정도로 언약이 각인되었다. 하나님께서 요게벳이 절대 여정 속에 있으니까 되어지는 응답을 주신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보시기 바란다. 요게벳이 자기 지혜와 머리로 이렇게 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요게벳은 단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버렸더니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대 여정 속에 있는 자의 축복이다. 우리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여정 속에 있게되면 하나님께서 되어지는 응답을 주신다. 이 축복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이 응답이 있는 줄로 믿는다. 이 응답을 받은 요게벳의 아들 모세도 똑같은 응답을 받게된다. 하나님의 언약의 흐름 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출애굽을 일으킨다. 우리가 언약의 흐름 속에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사용하신다. 그냥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사용하신다. 다시 말씀드리면 문제가 오게되면 참는 것이 아니다. 언약 속에 들어가게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응답이 나타난다. 너무나 쉬운 이 방법을 모르고 자꾸만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지혜롭게 산다. 그러면 세상을 다시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다 놓치고 불신자의 종노릇 하면서 산다. 그러면 하나님의 절대 여정 속에 있는 사람에게 되어지는 축복을 주시는 데 그 목표가 무엇인가.

3) 절대목표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세를 준비시키는데 80년을 준비시킨다. 40년 동안 궁중에서 교육을 받게하시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훈련을 시키셨다. 모세의 역할이라는 것은 단순히 출애굽해서 해방시키는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표를 위한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40년 광야생활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무엇을 하게 하셨는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치유시키셨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백성들이 치유받고 온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치유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이 광야 40년이다. 치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출 20:1-2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출 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누구냐. 너희를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한 하나님이다. 능력의 손으로 인도한 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신 것이 언약의 말씀이다. 너희들이 이 언약의 말씀만 붙잡고 살게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광야에서 허락해주신 것이 성막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성막 전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희생제물, 언약궤, 제물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말씀과 그리스도를 잊지 말라는 것이 성막이다. 말씀과 성막,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유해 나가신다. 또 하나 붙잡을 것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넌 다음 제일 처음 생긴 사건이다. 목이 너무 말랐다. 마라 라는 곳에 간다. 거기에 물이 있는데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해서 이야기하신다. 나뭇가지를 떼어서 물에 던지라고 한다. 던지자마자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 나뭇가지는 십자가의 나무를 이야기한다. 쓴 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단 물이 되는 것이다. 먹을 수 없는 물이 십자가를 통해서 생명수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나는 너희를 치유하는 여호와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너희를 치유하기 위해서 불러냈다고 하신다.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일꾼으로 삼아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를 치유하시고 치유의 사역자로 삼기 위해 부르신 것이다. 우리가 가정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움 당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힘들 수 있다. 아무 문제 없다. 주님만 붙잡으면 치유해주시기 때문에 해결된다. 나무를 던졌더니 쓴 물이 그냥 단 물이 되었다. 잡는 그 순간에 변화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 언약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것만 잡게되면 우리가 응답받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되어지는 응답이다. 이 절대 언약속에 있는 바울은 어떤 응답을 받았는가.


3. 절대언약 속의 누림

1) 지휘관이 된 바울

사도바울은 지금 가이사 앞에 서야하리라는 절대 언약을 붙잡고 로마로 가고 있다. 그 사이에서 풍랑이 일어났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읽은 것과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가이사랴를 처음에 떠나올 때는 초라한 죄수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지금 배를 타고 가면 풍랑을 만날 것 같습니다 하니까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오늘 31절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도망가려하니까 사도바울이 백부장에게 이야기한다.

행27: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백부장이 사도바울의 말을 받아드리고 그대로 가서 줄을 끊어버린다. 지금 죄인이었던 사도바울이 지휘관이 된 것이다. 백부장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지휘관이 된 것이다. 백부장과 군인은 그 명령을 받는 부하의 신분이 된 것이다. 완전히 신분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영적 서밋이 받는 축복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행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사도바울은 이미 그를 다 통제할 수 있는 통치권을 하나님께서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놀라온 축복을 사도바울에게 주셨다.

2) 목자가 된 바울

33절 말씀에 보면 절망 가운데서 보름이나 지나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따. 그래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해서 너희들 음식을 먹어라 하고 권유한다. 34절 말씀에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한다. 놀라운 말씀이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알고 머리카락 하나 잃지 않고 구원받을 것이라 하는가. 그런데 이 말씀은 눅 21:18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를 선포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생명의 말씀을 선포했다. 뿐만 아니라 35절 말씀에 모두를 앉혀놓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꼐 축사하시고 떼어먹기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 아닌가.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굼주린 무리에게 떡을 떼어준 일이 있었다. 지금 사도바울은 배에서 모든 사람들을 앉혀놓고 떡을 떼어줬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축복 기도를 했다. 그 순간에 36절 말씀에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사도바울로 하여금 선한 목자의 신분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떡을 나누기 위해 축사기도를 하는 순간에 275명의 사람들이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평강 가운데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치는 상황이 전혀 관계가 없었다. 영혼이 치유받는 순간이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순간이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선한 목자로서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쓰셨다. 절대 언약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어지는 축복을 주신다. 우리가 세상 문제에 시달리며 세상 사람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에게 절대 언약을 주셨다. 이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되어지는 응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신다. 사도바울이 받은 응답을 우리에게도 허락해주신다. 이 축복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란다.


결론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무슨 말씀을 잡는가.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결단한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절대 언약 속으로 들어가겠다 결단한 것이다. 마치 요게벳이 마음을 정하고 자기 아들은 석 달 만에 그 핏덩이를 갈대상자에 띄운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셨다. 여러분들이 뜻을 정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응답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25 views0 comments

Recent Posts

See All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