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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예언(사7:6-14)
서론
제가 우리 교단에 있는 목사님에게 카톡을 하나 받았다. 그 목사님의 아들이 선교사로 나가게 된 모양이다. 선교사로 나가면서 그냥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유언장을 써놓고 갔다. 그것을 받은 아버지가 카톡에 내용을 올렸다. 제목이 ‘아들 부부가 작성한 유언장을 보며’ 였다. 아들이 쓰기를 ‘건강한 육체와 생각이 있으나 언제 죽을지 몰라 이 유언장을 씁니다. 유언에 대한 집행자는 아버지이며 유해 처리는 현지에서 하고 현지인에게 필요할 경우에 내 장기를 기증합니다. 내 두 자녀의 후견인도 아버지이십니다. 재산이 있다면 법적 상속인에게 나누되 본인의 부차와 장례식 비용 처리를 우선으로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아버지가 한 말이다. ‘유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 아비가 아들에게 듣자니 먹먹한 가슴을 때린다. 34세 두 아이의 아버지. 젊은 시절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은 변호사보다 선교사의 삶이 더 값지다. 5년만 이슬람 영혼을 섬기러 갑니다’ 다시 생각해보거라. 그 길만 선교냐. 변호사로 돈벌고 단기 선교 비용을 대면 되지 않겠냐. 정말로 하겠다면 목사가 되어서 평생 헌신하면 되지 않겠냐. 두 주 전에 그 나라에서 선교사가 피살이 되었지 않느냐. 그러니까 아들이 또 편지를 썼다. 아버지 목사는 하늘이 내는 것 입니다. 제가 갈 곳은 목사 신분으로는 안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한다고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고민도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의 글이다. 자식 이길 부모는 없다던가. 아들이 선교사의 면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교회를 개척하신 우리 아버지, 며느리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자기 남편이라고 썼다. 고맙습니다. 하나님 주의 뜻을 이루소서. 선교사로 떠나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성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땅에는 기쁨이 있었으나 하늘에서는 큰 슬픔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선교사로 보내는 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글이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이 목사님은 크게 성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났다.
1. 임마누엘 언약
1) 역사적 배경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마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 말씀을 주셨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이 땅에 재앙많은 이 땅에 보내셨다. 우리는 그냥 있지만 이 때 하나님의 심정은 여러가지로 슬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임마누엘 언약의 말씀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해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성경을 찾아보았다. 사 7:14을 쓰게된 역사적인 배경을 조사해보았다. 이 사건은 기원전 745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북쪽에 있는 아람나라, 시리아,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서 남 유다를 공격했다. 그래서 하루에 남 유다 병사를 12만명을 죽이고 백성들과 군인들 20만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 때 당시에 왕이었던 요담 왕이, 휼륭한 왕인데 전쟁으로 죽게된다. 전쟁에서 승리했던 아람나라와 북이스라엘은 다시 공격하자 해서 2차로 공격해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공격한 목적이 요담왕의 아들되는 아하스왕을 죽여서 다윗 가문을 끊어버리고 다윗과 상관없는 왕을 세워야겠다 하는 계획을 갖고 연합해서 공격을 해들어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모든 것을 다 잘 보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경을 통해서 다윗과 세우신 언약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겠다. 다윗이 성전을 진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을 때 하나님의 너무나 기뻐하셔서 큰 축복을 주셨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왕조가 계속되고 영원하게 네 후손을 통해서 유다가 다스려질 것이다 하는 것을 언약으로 주셨다. 그런데 아람 나라와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서 다윗 왕을 끊어버리겠다고 공격해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아시고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사 7:4에 나타난다.
사 7: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왕에게 가서 너희들이 무서워 벌벌떠는 아람나라는 부지깽이, 다 타버린 재에 지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믿고 기도하면 내가 이루겠다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는데 아하스 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하면서 거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하스는 유다 왕 중에서 악한 왕 중에 하나다. 앗수르에서 섬기는 몰렉신을 받아들여 자기 아들을 산 채로 태워서 바치는 죄를 저질렀다.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범해서 도저히 심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면서 아하스왕을 타이르면서 얘기하신다. 내가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쳐 없애겠다 내 말만 들어라 하신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렇게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이 언약을 주신다. 내가 해결해주겠다 걱정하지 말아라 언약만 잡아라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여러가지로 나온다.
2) 사7:14의 해석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보수주의 자들이 전부다 예수님에게 붙여서 얘기하는 거지 틀린 말이다 한다. 그 이유가 뭐냐면 처녀가 잉태하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나타난 처녀의 원어를 보면 그냥 젊은 여자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의 처녀는 베틀라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베틀라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알마라는 단어를 썼다. 알마는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들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처녀라고 나오지도 않는데 왜 처녀라고 해석을 했느냐 잘못된 것이다 하고 해석한다. 요세푸스라는 유명한 역사가가 있다. 이 사람은 이 내용을 젊은 여자인데 동정녀 마리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왕이었던 아하스의 아내를 얘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임마누엘은 그의 아들 히스기야 왕을 의미한다고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맞다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아내를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임마누엘 이라는 것은 아사야 선지자의 둘째 아들이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건이 또 하나 있다. 기원서 200년 부터 100년에 이르기까지 유다 백성들이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이라고 있다. 예수님 태어나기 100년도 전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지에 퍼져서 살고있었다. 그 지역에 살다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히브리어를 다 잊어버리고 헬라말을 쓰고 살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후손들이 알아볼 수 있다록 하자고 결정을 했다. 이스라엘 12족속 가운데서 성경을 깊이 아는 사람 6명을 선출하게된다. 합쳐서 72명이 모여서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에서 헬라말로 번역을 하게된다. 성경을 간단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7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서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 기도던 것이다. 100년 이상이나 걸려서 성경을 번역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최고 석학자들끼리 모여서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번역한 내용을 보게되면 헬라어로 처녀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헬라말로 처녀, 동정녀인 파르테노스라는 단어를 썼다. 최고 석학들이 모여서 번역을 했는데 동정녀가, 처녀다 하는 것을 예수님 나시기 이전에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마태는 마 1:23에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기록을 한 것이다. 바로 그 분은 동정녀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셔서 언약을 성취하시게 된다.
2. 언약의 성취
1) 마리아에게 성취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가 아하스가 왕으로 있었을 때와 비슷한 영적상태였다. 이스라엘은 로마에 속국된 상태였다. 당시 왕은 다윗 왕의 후손이 아니라 에돔 족속의 왕이었다. 동방박사가 찾아가서 유대왕을 찾으러왔다 하니까 헤롯이 그 얘기를 듣고 이 왕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윗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말씀을 막고자하는 의도로 헤롯왕이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가서 두살짜리 아이는 다 죽여버리라고 했다. 헤롯성전에 찾아갔던 동방박사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물어봤을때 신학자들과 모든 사람이 알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였다. 복음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나타나서 당시에 열 다섯살, 열 여섯살 정도 되었던 렘넌트 마리아를 찾아가셨다. 그 렘넌트에게 찾아가서 말씀하신다.
눅 1:31-33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놀라운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다고 한다. 그 아들은 바로 다윗의 왕위를 계속할 아들을 보내신다는 것이다. 그 왕은 바로 누군가. 영원히 다윗의 자손으로서 야곱의 집을 다스릴 영원한 나라의 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해주신 언약을 그대로 인용하시면서 성취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언약을 이루어나가신다. 그것을 지식인이나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않으시고 렘넌트 마리아를 찾아가셨다. 그 말을 들은 마리아가 이야기하고 있다.
눅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니까 천사가 얘기한다.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 때 마리아가 이른다.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 때 천사가 떠났다. 지금 마리아는 좋습니다. 저에게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하고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천사가 떠났다. 이 언약을 잡은 마리아는 어마어마한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된다. 바로 이 사건을 보게되면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잡은 자에게 찾아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리아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겠습니다 하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냥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시는 내용이 굉장히 많이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2) 하나님은 찾으심
창 3:9에도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내용이 나타난다.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 저주 받은 아담과 하와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창 3: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찾아오셔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 3:15의 언약을 주신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깨겠다 하고 답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찾으신 자에게는 반드시 응답을 주신다. 모세에게도 나타나신다.
출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냥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반드시 주신다. 이 언약을 네가 잡기만 하면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려고 하니까 네가 가라 하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들어있다. 응답정도가 아니라 축복의 말씀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해야한다. 그 말씀이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다. 마리아는 내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얘기했다. 지금 처녀가 잉태했다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하스 왕은 내가 나가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없애버리겠다 약속을 했는데도 나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얘기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하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선지자가 말은 하지만 안지켜주시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아하스에게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북쪽에 있는 앗수르를 불러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멸망시키는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자기 생각, 방법대로 앗수르를 부르게된다. 그 바람에 앗수르를 통해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멸망시킨다. 그런데 나중에는 유다, 자기까지도 위급한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했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는 자가 승리하는 자이다.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자가 승리하는 자이다. 마리아가 언약속에 들어가게 되니까 절대 불가능 한 것이 절대 가능으로 바뀌는 것이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할 수가 있는가. 그 세상 어떤 사람도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절대 가능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이 축복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3. 언약 가진 자가 남은 자
1) 남은 자의 의미
언약잡은 자가 누군가. 바로 남은 자인 것을 붙잡아야겠다. 남은 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 6:13을 통해서 남은 자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사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그루터기라는 것은 남은 자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서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사 7:3 말씀을 보게되면
사7:3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네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를 만나라는 것이다. 왜 스알야숩을 데려가라 하는가. 스알야숩 이름의 뜻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하는 뜻이다. 아하스왕에게 가서 스알야숩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남은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가르쳐주라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쓰신다. 여러분 이 축복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남은 자가 누군가.
2) 남은 자는 거룩한 씨
남은 자는 성경에 굉장히 많이 나온다. 창 6장 보게 되면 모든 죄악 가운데서 홍수사건이 생긴다. 그 홍수 가운데서 남은 자가 있었는데 그게 노아와 그 가족이었다. 창 11장에 바벨탑 사건이 나타난다. 바벨탑 사건에서 모든 인간이 타락했다. 이 가운데서 남은자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쓰셨다. 이집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남자 아이는 다 죽이라고 바로가 명령했다. 그 가운데 남은 자가 있었다. 바로 모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를 쓰셨다. 무슨 말씀인가. 남은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쓰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은 자의 축복 속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남은 자. 다니엘과 세 친구,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다. 영적으로 캄캄해져가는 말세에 남은 자가 누구인가. 언약가진 우리가 남은 자 인줄로 믿는다. 여러분들이 바로 남은 자 인 줄로 믿는다. 사 6:13 말씀에 보게되면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얘기하고 있다. 언약가진 우리가 바로 거룩한 씨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거룩한 씨인가. 세상 살릴 전도자이기 때문이다. 이 축복 가운데 있는 줄로 믿는다.
결론
남은 자는 사명이 있다. 왜 남은 자로 부르셨는가.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라는 사명이 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고 다 이루셨다고 하셨다. 그것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그냥 받을지 몰라도 아까 선교사의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며 이 말씀을 보시라. 자기 아들이 선교지로 나가면서 죽을 지도 모르니까 유서를 써놓고 나가는 것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말씀이 달라진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어떤 죽음을 당해야할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저희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친히 죽어야할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셨겠는가.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영광스런 보좌를 다 버리고 타락되고 더러운 이 세상에 아들을 친히 보내시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서. 죄와 더러운 것에 죽어있는 인간을 살리기위해서 영광만 받아야할 자기 아들을 보내시는 것이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게 하심으로서 사단의 세력을 깨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행하게 하셨지만 그 일을 행하시게 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은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이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다면 구원받은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겠는가. 입을 열 때 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만을 증거해야할 줄로 믿는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십니다. 나의 구원자십니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평생에 예수님만 자랑하겠습니다. 예수님만 증거하겠습니다.’ 이런 삶이 되어야할 줄로 믿는다. 우리가 이것의 증거가 될 때 이 어두워진 세상이 치유를 받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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